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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야기

이민홍 결혼식 (2022.11.27.일.정오)

홍배는 형제자매가 무려 아홉인데 그 중 다섯 명이 여자이고 네 명이 남자인데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이 첫째와 셋째 아주버님이시다.
이번 결혼을 하게 된 조카는 바로 셋째 아주버님의 아들이었다.

해서 여러 곳에 퍼져 살고 있는 형제자매가 결혼식 전날 미리 만나 회포를 풀기로 했고 진교 근처 펜션을 예약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날이 토요일이다보니 웬만한 펜션은 거의 다 예약이 끝났고 겨우 한 곳을 예약했다는데 가보니 왜 그 펜션만 남아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토요일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밥 한 끼를 챙겨먹고 오후 1시쯤 집을 나섰다. 먼 길을 가야 했으므로 홍배가 운전을 했고 각자 먹을거리 한 가지씩 가져오기로 해서 우리는 한산소곡주를 준비했다.

먼저 셋째 형님 집에 도착해 일찍 도착한 친척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간단하게 잔치음식 먹으며 모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펜션으로 출발!
근데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거라 예상했던 펜션은 주 도로를 벗어나 산속으로 접어들어서도 한참을 가다가 마침내 아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서야 드디어 나타났다.
그런데다 앞서 가던 둘째형님의 차가 가파른 언덕에서 멈추더니 다시는 올라가지 못하고 계속 뒤로 밀려나는 사태가 벌어져 뒤따라 가던 나를 비롯해 그 차에 탔던 모두를 긴장시켰는데.....뒤로 더 이상 밀려날 여지가 없는 순간에 극적으로 엑셀이 말을 들어 위기를 모면했다. 그만큼 가파른 곳에 펜션이 있었고 도착해보니 데크가 썩음썩음하고 덩치만 컸지 어디 하나 성한데가 없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잠시 머물다 갈거니까 문제는 안되는데 그런 펜션도 하루 사용료가 무려 42만원이란다, 원 세상에....

식구들은 도착하자마자 음식을 펼쳐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시간이 지날수록 들어간 술의 양이 많아지면서 말소리도 커지고 웃음도 커지고 여기저기서 동시에 떠들어대는 바람에 정말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어떻게 그렇게 끝없이 먹을 수 있을까?
나는 멍하니 앉아 흥미로운 기분으로 그들의 향연을 지켜보았다.

큰아들 겨레는 포항에서 차를 렌트해 펜션으로 바로 와서 함께 어울려 먹고 마셨는데 둘째 나라는 토요일도 근무라 일요일에 진주 결혼식장으로 바로 오겠다 했다.

문제는 늘 홍배에게 있다. 평소 혼자 술을 먹을 때는 술의 양을 스스로 절제하여 적당히 먹는 것이 가능한데 누구랑 함께 먹는 술자리가 되면 절대 절제가 안 된다는 것...
해서 잔칫집에 도착해서 먹기 시작한 술먹기는 저녁 내내 이어졌을 뿐더러 모두가 잠든 밤까지 이어지다가 토막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부터 해장술을 또 마시고 혼자서만 술에 취해 예식장에 도착했고 식이 끝나고 식당에서 또 술을 마셨다.
그렇게 취하게 되면 어떻게도 통제할 수 없고 주변 사람들 누구의 말도 듣질 않는 안하무인이 되어버린다는 것....
아들들도 그런 아빠를 보며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결혼식은 일요일 정오 진주에서 있었는데 너무 이른 시간부터 잠을 깨우는 바람에 아침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세수만 겨우 하고 펜션을 나섰다.
결혼식장 가기 전에 시어머님과 셋째 아주버님 묘소를 찾아뵙기로 한 것!
술에 취한 홍배는 묘소로 들어가는 길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한참 헤맨 후 찾을 수 있었다.
모두 함께 절을 올리고 다시 셋째 형님 집으로 돌아왔는데도 시간은 넉넉하게 남아 그제서야 화장도 하고 커피도 마실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오전 10시 30분에 진주로 출발, 그때부터 또 한 시간 기다려 드디어 예식이 시작되었다.
두 아들은 축의금 받는 일을 했는데, 그런 단순한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큰아들은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하객이 너무 많아 봉투 받고 적고 돈 계산하고 식권 나눠주고 하는 것도 정신 없는데 예식장 측에서 자꾸 일을 주는 바람에 짜증이 났다고 했다. 중간에 셋째 형님이 상황파악을 못하고 식권에 대한 말을 한 마디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소리가 날 뻔했다. 돈이 관계되다보니 돈에 민감한 셋째 형님의 입장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큰아들은 전혀 그런 상황을 모르니 그런 오해가 생긴 것.....

밥을 먹고 나서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우리는 폐백을 받았고, 그 동안 두 아들은 정산실에서 축의금 정리를 한 후 드디어 모두와 헤어지고 우리 식구만 남았다.
둘째아들이 서울로 올라갈 버스 시간이 오후 5시여서 그때까지 함께 있어주기로 하고 우리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제서야 조용하게 우리만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큰아들 겨레 기분도 좀 풀어주고.....

오늘 결혼한 사촌형은 우리 가족에겐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겨레, 나라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마다 방학 내내 시골 할머니댁에서 보냈는데, 할머니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사촌형은 큰아들보다 세 살 위여서 거의 같은 또래 셋이서 날마다 함께 놀았다. 아들들은 할머니댁에서 아침밥만 먹으면 형네 집으로 가서 종일 놀고 큰엄마가 차려준 점심까지 먹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러니 아들들 어린 시절 시골생활은 그 형이 다 키운 셈!

해서 우리는 그때의 고마움을 축의금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하기로 했다.
큰아들은 300만원, 둘째아들은 100만원, 우리는 100만원....

셋째 형님은 예상보다 많이 들어온 축의금을 보고 반색을 하며 수고했다고 아들들에게 수고비까지 주셨단다.
다행이다, 남편 없이 혼자서 아들 장가보내느라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으셨을텐데 축의금이 많이 들어와 기분이 좋아졌다니.....
수고 많으셨습니다, 형님!

우리 가족은 오후 4시쯤 헤어졌다. 큰아들이 포항까지 가서 차를 반납해야 하니 좀 여유롭게 출발하기로.....
둘째아들을 진주고속터미널에 내려주고 취한 홍배를 태우고 나는 지겹도록 운전을 해서 서천집에 도착했다, 날이 어두워져야....
아고고, 되다 돼.
결혼식 두 번 있다간 몸져 눕겠다!